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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06월20일 10시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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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이데올로기와 교육
-동양대학 최성해총장, 대학지성 34호-

위험한 나라 


최근 우리는 좌우 갈등을 극심히 겪고 있다.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학교에서는 이른바 전교조를 중심으로 대학에서도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이승만, 박정희를 비롯하여 근대사의 많은 업적을 남긴 대통령이나 정치가들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분위기가 넘쳐나고 있다.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오로지 독재자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고, 근대화의 상징이기도 한 박정희 전대통령도 마치 주지육림(酒池肉林)의 봉건 군주처럼 묘사하는 것이 지성인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를 본다. 물론 이 분들의 행적을 전적으로 옳게만 보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역사적 인물의 평가는 시대의 공과를 함께 따져야하는 것인데 교육의 일선에 있는 상당수의 교사들이 어느 일방적인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있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기도 하다.

노벨상 후보까지 거론되던 유명 시인이 카다피에 대해서 극찬하면서도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한다. 수많은 탈북자와 꽃제비들이 있는데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전환 시대의 양심이라던 교수는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해서는 전대미문의 독재자라고 가르치면서도 북한 정권의 폭정과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국민의 정부 당시 청와대 최고위 인사가 모장관을 지칭하며 “이 정부 안에 간첩이 있다.”고 외치기도 했다는 글을 읽었다.
 
친북 인사였던 유명 목사 한 분이 북한 방문 후 북한 정권에 대해 비판적 발언을 하자 이른바 진보진영에서는 그를 아예 실성한 사람으로 취급하여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때로 인간에게 지식은 병이 되기도 한다. 연봉 1억 4천만원을 받는 20년 경력의 항공기 기장은 친북 사이트인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사방사)’에서 열심히 활동하기도 하다가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북한을 찬양하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현재 병무청 공무원, 변호사, 철도공무원 등 70여명이 북한을 찬양하는 블로그를 만들거나 종북 사이트에 글을 올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보도를 보면서 착잡하다. 반면 그들은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이승만과 박정희 전대통령이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시켰다며 비난 일색이다.

검찰 등에 따르면, 국내 대표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된 종북 성향의 카페만 10여곳에 이르고, 아무런 제재 없이 접속이 가능한 종북 사이트가 122개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이들 사이트 가운데는 북한 정권이 직접 관리하는 사이트가 있기도 한데, 이 사이트는 트위터 계정까지 개설해 현재 1만648명의 추종자(follower)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을 규제할만한 법률은 국보법이 전부인데도, 노무현 전대통령이 국보법에 대해 “칼집에 꽂아 박물관에 보내야 할 독재시대의 유물”이라고 한 이후, 국보법은 마치 5공시대의 공안정국처럼 몰고 가고 있다. 국가원수가 한 말이라고 하기엔, 그 사상적 저의가 의심스럽다.

게다가 일명 ‘미네르바법’인 전기통신 기본법 조항에 대한 위헌결정으로 천안함·연평도 유언비어에 대한 처벌근거도 사라지고 말았다. 북한 정권의 도발이 계속되는데도 소위 진보인사들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없다고 강변한다.
 
아무리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잘 살아도 북한과의 전쟁에 지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아테네의 멸망이 그 대표적 예다. 한류니 IT 강국이니 세계경제대국이니 하는 말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 영토는 그리 넓지 못하다. 한국전쟁 당시도 1주일 만에 전국토가 유린당하고 말았다. 지금 한국에서 전개되는 많은 일들이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경제 강국 한국을 시샘하던 세계인들은 더욱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이 모든 원인은 복잡하게 얽힌 한국적 상황도 있지만, 교육이 제구실을 못했기 때문이다. 일부 교사와 교수들이 북한 정권이 정통성을 가졌고, 한국전쟁도 대한민국이 도발한 듯이 가르치다보니 종북·친북이 마치 지성인양 판을 치는 것이다.

해방전후사를 보면 남북한 모두는 독립운동의 주축 세력인 김구 계열이나 박헌영 계열이 제거되고 독립운동의 방계 그룹들 특히 일부의 친미‧친소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따라서 북한 정권을 정통성을 가진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민족사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2006년 ‘한국 청소년 개발원’이 한·중·일 3개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전쟁이 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앞장서 싸우겠다.”는 응답은 일본이 41.4%, 중국은 14.4%인데 반하여 한국의 경우는 10.2%에 그쳤다. 또 ‘전쟁이 나면 외국으로 출국하겠다.’는 응답은 한국이 10.4%로 가장 높았고, 중국은 2.3% 일본은 1.7%였다. 한국 교육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이들이 스스로를 진보라고 하고 자신들의 견해를 수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수골통’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 제적되었고 강제 징집되어 군대에 갔지만 열심히 군생활을 마쳤고, 내 아들을 자랑스럽게 해병대에 보냈다. 그러면 나도 ‘보수골통’인가?
 

진보적 교육이라는 명제
 

진보는 미래가 보다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간다는 일종의 신념으로 베이컨(Bacon), 데카르트(Descartes) 이후 많은 사상가들에 의해 논의되어왔다.
 
특히 이 진보의 신념은 암흑의 봉건시대의 장막을 걷고 시민혁명의 불을 밝힌 시대정신이었다. 당시 시민혁명의 지도자들은 왕당파나 온건주의자들과 대비하여 스스로를 진보 세력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좀 더 빠른 사회와 정치의 변화를 원하였다. 이들의 정신적·시간적 차이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윤색되면서 진보적 이데올로기가 등장하였고 이 개념은 프랑스 혁명정신(자유·평등·박애)과 긴밀한 관계가 있었다. 이것이 서유럽의 진보와 보수의 기원이다.

그러나 전교조나 한국의 이른바 진보 세력이 말하는 진보는 이 같은 개념이 아니라 1980년대 대학을 점거했던 주사파(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그룹)나 마르크스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념적 실험이 끝나버린 현대의 서유럽 사회가 진보를 반드시 마르크스적 관념으로 말하는 것은 아닌데 유독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한국에서는 종북·친북 세력과 연계된 주사파 이론이나 그 내면에 마르크스적인 발상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엄밀히 따져보면, 진보나 보수, 발전이라는 개념이 절대적으로 어떤 것이라고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이념적 합의가 있는 말도 아니다. 따라서 진보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에서 말하는 진보라는 개념은 철저히 북한의 주체사상과 마르크스적인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것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부 교수나 교사들이 진보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으며 이미 지나버린 과거사의 소용돌이에 끊임없이 어린 학생들을 몰아가기 때문이다. 전교조 교사들에게 묻고 싶다.

꿈 많은 초등학교 학생에게 <독재자 박정희>라는 만화책을 읽혀서 그들의 정신적 성장에 무엇이 도움이 될 것인가? 한국이 과연 미국의 식민지인가? 그렇다면 왜 중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이 한국식 경제개발모델을 닮지 못해서 안달인가? 친일매국노들과 그 후손들이 아직도 이 나라 정치경제를 좌우하는가? 그리고 일제시대의 친일 재벌 기업들이 지금 과연 얼마나 생존해 있는가? 특정 정치인 한 사람을 잡으려고 친일파를 20여만 명이라고 하는 것들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러다 보니 살판이 난 것은 국가적 반역이나 악질적인 친일분자들이었다.
 
친일파가 너무 많다보니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지도자는 미래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이들이 몰두한 일은 오로지 이미 60여년 전에 사라진 과거 친일분자를 잡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서 만든 기관에 엉뚱하게도 일본 전문가가 책임자가 되기도 한다.

일선 교수나 교사들의 잘못된 교육 탓으로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보수와 진보를 극심히 혼동하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개념들은 기본적으로는 마르크스적인 용어로서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진보와 보수(반동)라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생산력의 해방, 생산관계와 생산력의 모순 등의 매우 어려운 개념들이 있다. 쉽게 말해서 생산력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데 생산관계가 걸림돌이 되니 생산관계를 변화하는 생산력에 일치시키는 것이 진보라는 말이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 이후 이 말들은 의미가 없어졌다. 왜냐하면 마르크스가 말하는 진보라는 말 자체가 동적 개념으로 어떤 지향점이 있어야 하는데 소련이라는 진보의 실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후쿠야마 교수는 마르크스주의를 혹평하고 자유주의의 위대한 승리를 찬양하면서 ‘역사의 종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실제로 마르크스주의가 사라졌다기 보다는 좀 더 현실화되고 타협적이며 점진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형태로 변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고, 그것이 유럽의 사회당 정권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이미 중고품이 되어버린 마르크스의 개념에 주체사상이라는 이상한 꼬리표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스스로를 진보라고 하는 이들은 그들의 이데올로기인 반미에 동조하지 않고 북한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사람들을 보고 ‘보수골통’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진보나 보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이다. 친북적이고 반미하면 그것이 진보인가? 그러면 북한 정권은 진보 정권인가? (보수반동의 국가, 저개발의 개발) 현재의 북한은 마르크스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장 극렬한 보수반동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정치체제는 봉건적인 요소를 매우 많이 가지고 있으며 마르크스가 말하는 생산력의 해방과정을 조금도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 경제는 오히려 심화된 저개발 상태에 불과하다. 이른바 종속이론의 대가들이 중남미 자본주의 국가에 대해 지적했듯이 ‘저개발의 개발(Development of Underdevelopment)’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돈키호테적인 국가인 북한에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치경제적으로 북한은 심화된 종속의 상태이다.

북한은 사실상 중국의 1개의 성으로 전락한 상태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마르크스적으로 말한다면, 북한은 정치체제라는 상부구조가 하부의 생산관계와 생산력의 발전을 철저히 왜곡시켰기 때문에 역사의 추가 거꾸로 가고 있는 상태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수십만이 탈북자로 꽃제비로 떠돌고 있고 또 그 만큼의 많은 사람들이 정치범 수용소에서 생존의 한계상황에 놓여있다.
 
김정일 정권은 우리 5천년 역사를 통하여 어떤 폭군이나 전제군주도 그 처럼 많은 수의 자기 동포를 박해하고 파멸시키지 않았다는 진실만은 말해두어야 한다. 따라서 북한식의 정치경제 체제를 진보적이라는 말을 한다면 죽은 마르크스나 체게바라는 통곡할 것이다.

지난 5월 '진보정치 대통합'을 위한 대표자 연석회의가 결렬되었다. 민노당에서는 종북노선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의 인사 가운데 한 사람이 “21세기에 다 망해가는 봉건왕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니, 이건 정치가 아니라 사이비 종교”라고 비난했다. 그는 “도대체 21세기에 3대 세습과 인권문제에 대해 비판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토론'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한심한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그런데 왜 또 나는 이 자리에서 말해야 하는가? 이제는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될 상황이 온 것이다. 이 시점에서 침묵은 무지(無知)가 아니면, 기만(欺瞞)일 뿐이다.
 
-진보와 발전 그리고 교육- 
 
진보라고 할 때는 마르크스적 관점보다는 본래의 철학적 변증법적인 관점을 가지고 파악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즉 정(正)-반(反)-합(合)이 가지는 미래지향적인 속성을 파악하여 현재의 잘못되고 낡은 틀을 파괴하고 그 필요한 내용을 보존하면서 이를 극복하는 반(反)의 논리적인 내용을 잘 섞어서 미래의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회를 만들어 갈 때를 진보니 개혁이니 하는 용어로 사용해야 하면 된다.
 
진보는 발전 개념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진보는 발전의 역동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 뮈르달(Myrdal)의 “발전이란 총체적인 사회 체계의 상향 운동(movement upward of entire social system)”이라는 견해는 매우 적절하다. 즉 발전이란 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제도, 사상, 질서 등의 변화를 동시에 수반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의견의 다양성은 발전과 더불어 당연히 나타나는 것이지 오로지 하나의 견해만으로 세상을 보려고 한다거나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는 식은 곤란한 일이다. 현대 유럽에는 지금 우리가 겪는 사상적 갈등의 문제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만큼 사회가 성숙했다는 의미다. 이것은 각자의 단점을 보완하고 상대의 장점들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책대결을 통한 국민적 선택이 정치의 일반적 과정이 된 것이다.

우리의 경우 좌파나 우파는 그 분석방식이 서로 달라 상호 설득이 매우 어렵다. 유신독재와 5공화국의 시대를 거치면서 운동권은 더욱 좌편향되었고 여기에 북한정권도 크게 거들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고 무임승차했던 수많은 방관자 그룹의 존재도 한몫하였다. 이른바 진보좌파의 눈에 그들은 기회주의자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들이 이제 와서 마치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인양.”한다는 것이다.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이 점 우리 모두 반성해야할 시점이다. 그래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지금의 북한 인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바로 내 형제, 자매들이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는 인간의 기본적 존엄성에 대한 단일한 기준(single standard)을 가져야 한다. 당장 눈앞에서 김정일 정권의 서해 해상 도발에 의해 젊은 이들이 죽어가는데, 월드컵 때문에 덮어두고 그 후에도 무시한다거나,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주니 북한동포의 인권문제는 침묵해야 한다는 논리로 교육을 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가진 기본적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공자는 자기 평생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내가 싫어하는 바를 남에게 시키지 말라(我所不欲勿施於人)”고 했다. 이른바 종북 진보좌파 교사나 교수들은 스스로 물어야 한다. 나는 내 가족들을 데리고 북에서 살 자신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자유의지로 가서 북한에 가서 살면 될 것이다.

만약에 당신은 가기 싫은데도 학생들에게 종북 이념을 계속 가르친다면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왜 제자들에게 따르기를 강요하는가? 그렇다면 당신들이 투쟁할 곳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바로 북한이다. 북에 가서 민주화운동을 하고 생존의 기로에 있는 동포들을 구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이념적 갈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보다 적극적으로 갈등 해소를 위해서 교육적 기능을 회복하여야만 한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이야기하고 지역보다는 세계를 이야기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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